공주시는 광해군과 인조를 호종하여 공주에 왔던 조선 중기의 문신 오백령 선생을 12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오백령(吳百齡, 1560~1633) 선생의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덕구(德耉), 호는 묵재(默齋)이며 2021년 12월 공주의 역사인물로 선정되었던 오시수(吳始壽) 선생의 증조이다.
선조 21년(1588) 29세의 나이로 생원·진사에 합격했으며 선조 27년(1594)에는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의 한림으로 뽑혀 사관이 됐다. 이어 사간원, 사헌부, 성균관, 홍문관, 병조, 의정부 등 중앙관서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동부승지로 임명되어 당상관이 되었으나 이후 인목대비 폐모론이 일어났을 때 정청(庭廳)에 참여하지 않았다가 파직됐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즉위하자 형조참판으로 다시 등용되었고 도승지, 대사간, 대사헌 등을 지냈다.
시에 따르면 공주와 동복오씨의 인연은 오백령 선생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선생은 임진왜란 중인 1593~1594년에 분조를 이끌던 광해군을 공주로 호종하였으며 인조 2년(1624)에 일어난 이괄의 난으로 인해 인조가 공주로 파천할 때도 인조를 호종했다. 선생은 광해군을 호종한 공으로 위성공신 3등에 책록되었으며 인조를 호종한 공으로 사후 영의정에 추증됐다.
이후 작은아들 오단(吳端)에 이어 증손인 오시대(吳始大)까지 25년 동안 3대에 걸쳐 직계비속 4명이 충청도 관찰사로 임명되어 공주에 부임함으로써 동복오씨는 공주와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
묵재공영각중수기에 따르면 본래 선생의 영정은 황해도 배천의 문회서원에 형 오억령과 함께 봉안되었으나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훼철되자 후손들이 단지리 월굴마을로 사우를 중수하여 이전했다. 당호는 오백령의 당호를 따라 휴복영당이라 했으나 사우가 오래되어 2004년에 영당을 새로 건립하면서 ‘묵재영당’으로 고쳤다.
조병철 문화재과장은 “조선 중기 광해군과 인조를 호종하여 공주와 인연을 맺었던 오백령 선생의 삶을 기리기 위해 12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했다. 12월 중 시민을 대상으로 관련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